광화문 촛불집회, 전인권 공연 영상
11월 19일
공연순서는
상록수,걱정말아요 그대,애국가,행진입니다.
상록수
저들의 푸르른 솔잎을 보라
돌보는 사람도 하나 없는데
비바람 맞고 눈보라쳐도
온누리 끝까지 맘껏 푸르다
서럽고 쓰리던 지난날들도
다시는 다시는 오지 말라고
땀 흘리리라 깨우치리라
거칠은 들판에 솔잎되리라
우리들 가진것 비록 적어도
손에 손 맞잡고 눈물 흘리니
우리 나갈 길 멀고 험해도
깨치고 나아가 끝내 이기리라
우리들 가진것 비록 적어도
손에 손 맞잡고 눈물 흘리니
우리 나갈 길 멀고 험해도
깨치고 나아가 끝내 이기리라
깨치고 나아가 끝내 이기리라
걱정말아요 그대
그대여 아무 걱정 하지 말아요
우리 함께 노래 합시다
그대 아픈 기억들 모두 그대여
그대 가슴 깊이 묻어 버리고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떠난 이에게 노래 하세요
후회없이 사랑했노라 말해요
그대는 너무 힘든 일이 많았죠
새로움을 잃어 버렸죠
그대 힘든 얘기들 모두 그대여
그대 탓으로 훌훌 털어 버리고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우리 다 함께 노래 합시다
후회없이 꿈을 꾸었다 말해요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우리 다 함께 노래 합시다
후회없이 꿈을 꾸었다 말해요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우리 다 함께 노래 합시다
후회없이 꿈을 꾸었다 말해요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우리 다 함께 노래 합시다
후회없이 꿈을 꾸었다 말해요
우리 다 함께 노래 합시다
새로운 꿈을 꾸겠다 말해요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우리 다 함께 노래 합시다
후회없이 꿈을 꾸었다 말해요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우리 다 함께 노래 합시다
후회없이 꿈을 꾸었다 말해요
우리 애국가 가사는 당연히 모두가 아시리라 생각하니 적지 않습니다.
기본!
행진
나의 과거는 어두웠지만
나의 과거는 힘이 들었지만
그러나 나의 과거를 사랑할 수 있다면
내가 추억의 그림을 그릴수만 있다면
행진 행진 행진 하는거야
행진 행진 행진 하는거야
나의 미래는 항상 밝을수는 없겠지
나의 미래는 때로는 힘이 들겠지
그러나 비가 내리면 그 비를 맞으며
눈이 내리면 두 팔을 벌릴꺼야
행진 행진 행진 하는거야
행진 행진 행진 하는거야
난 노래 할꺼야 매일 그대와
아침이 밝아올때 까지
들국화
1980년대 그는 조용필, 산울림, 유재하 등과 함께 청년문화를 이끌었다. 그가 소속되었던 들국화는 대한민국 록의 스피릿을 결정지었고 전인권은 그 중심에 서 있었던 인물이다. 전인권이 메인 보컬로 참여했던 '들국화 1집'은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 목록에서도 유재하 1집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2000년대에는 여러 실수로 노망난 할아버지로 기억되다가 2011년 들국화 재결성 이후 'King of Rock'으로 다시 부활했다. 하지만 들국화의 드러머 주찬권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들국화가 사실상 해체에 이르게 되어버리자 자신의 이름을 건 '전인권 밴드'를 결성하여 음악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들국화 시절 대중에게 그의 목소리는 충격 그 자체였다. 오죽하면 들국화 최고의 명곡 중 하나인 '그것만이 내 세상'의 금지곡 지정 사유가 '창법 저속'(...).참고..)~~대체 이게 뭐야.. 참고 링크의 경우 한창 목 상태가 최악일 때라 정도가 더 심하다. 다른 영상의 경우 훨씬 듣기에 낫다. 바이브레이션이 없고 내지르는 샤우팅 창법이 주 원인. 솔로 활동을 시작하기 전에는 판소리 명창들에게 창을 배워서 동굴에서 1년동안 득음 연습을 했다고 한다. 결국 국내외에서도 찾기 힘든 독특한 창법을 지니게 되었다.
이 시절엔 타고난 높은 톤의 목소리로 벨팅을 통해 3옥타브대의 고음을 쉽게 소화해내는 보컬이었다.[4] 당시에는 지금보다 목소리가 가늘고 톤이 높았기 때문에 양희은의 성대모사를 하고 다니기도 했다고 한다.[5] 김현식과 고음 대결을 해서 이긴 적도 있다는데[6]이는 한영애의 바라본다에서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두 사람이 그 곡에서 코러스로 참여했는데, 거기서 초고음의 샤우팅을 내지르는 남성이 바로 전인권이다.
하지만 같은 해 여름, 조덕환의 권유로 전인권, 조덕환, 허성욱 세 사람이 밴드를 재결성한다. 1984년 겨울에는 밴드 들국화가 결성되었으며, 1985년 6월에는 최성원이 재합류했다. 데뷔 앨범은 1985년 9월 발매된다. 그동안 들국화의 곡들은 드럼 파트가 없었기 때문에 리듬이 강조되지 않아 포크적인 성향을 띄고 있었지만, 앨범 녹음 과정에서 드럼과 더불어 일렉기타 세션이 추가되었다. 결과적으로 들국화의 곡들은 이전보다 락적인 이미지가 훨씬 더 강화되었다. 여기서 김도균의 증언을 보자면 다음과 같다.
헤비메탈 밴드 백두산, 아시아나의 기타리스트였던 김도균의 회고에 따르면 들국화는 포크 음악으로 부터 출발했다고 한다. '처음 볼 때는 들국화도 3인조였죠, 그런데 조금 독특한 멤버 구성이었습니다. 드럼 없이 어쿠스틱 기타(전인권), 일렉트릭 기타(조덕환) 그리고 베이스(최성원). 사실 처음 보는 형태였죠.[7] 매일 밤마다 연주를 하니까 항상 만나게 되고 또, 농담도 서로 자주 주고 받으며 아주 사이 좋게 지냈었습니다. 그 후 앨범을 내고 국내에서 상당히 유명해졌죠. 사실 음악적인 스타일은 저희와는 달랐습니다. 제가 볼 때는 포크 음악으로부터 출발한 것 같습니다. 그 쪽의 선배들은 한대수, 김민기, 조동진 등 이런 분들로부터 내려온 라인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rock 과 folk music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함으로 서로 돕게 되는 것입니다. 미국에서도, 밥 딜런 노래를 지미 헨드릭스가 부르는 등 같은 히피 시대의 동지들이죠...' 김도균 홈페이지. 지금은 없어짐.
들국화 1집은 발매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크게 성공하였으며 후에 대중음악 100대 명반 중에 1위에 오르기도 하였다.
타이거JK는 전인권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본인의 6집 타이틀 곡인 <소외된 모두, 왼발을 한 보 앞으로!>에서 "소외된 모두 왼발을 한 보 앞으로/ 그 다음은 오른발의 차례/ 눈앞을 향해 행진 '전인권'의 열정 어태킹(Attacking)"이라는 랩을 만들어서 넣기도 하였다. 이 랩에서 언급되는 '행진'은 물론 들국화 1집의 1번 트랙 곡이다.
2번 트랙인 '그것만이 내 세상' 한 곡만 해도 YB, 김경호, 이수, 권인하, 박효신, 포지션, 요아리, 박완규, 더원, 하동균, 영웅재중, 박정현, 정준영, 소향 등의 수많은 가수들이 리메이크하거나 공식 무대 혹은 비공식 무대에서 불렀다.
그리고 들국화는 1987년에 해체되었다.
광화문 촛불집회, 들국화 전인권 공연 영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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